삼국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에 이곳 군산지역은 마한(馬韓)의 영토에서 백제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으며, 그 시기는 온조왕대(溫祚王代)라고 적혀 있는『삼국사기』의 기록과는 달리 대략 4세기 중엽의 근초고왕대(近肖古王代)로 추정된다. 그의 남진정책에 따라 군산을 포함한 전북지역 일대가 백제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군산 지역과 관련된 곳으로 사기에 그 이름이 보이는 백제시대의 지명은 시산군(屎山郡)과 마서량현(馬西良縣)과 부부리현(夫夫里縣)이다.

이들 지역은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년) 지방통치조직의 정비과정에서 임피군(臨陂郡)과 그 관할인 옥구현(沃溝縣), 회미현(澮尾縣 : 현재의 회현면)으로 각각 그 이름이 바뀌어 졌다. 임피군은 또 이들 옥구현과 회미현 이외에 함열현(咸悅縣)까지도 거느리고 있었다. 요컨대, 오늘날과는 달리 이 지역의 중심은 임피였으며, 이같은 체제는 사실 백제시대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 산월리 출토 옹관
[군산 산월리 출토 옹관]

삼국시대의 군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최근 조촌동, 성산면 여방리·도암리, 옥구읍 옥정리, 나포면 장상리 등 금강 유역 일대에서 발굴된 백제시대의 고분이 주목된다. 이들 중 성산면 여방리 고분에서 은제 팔찌와 반지, 순금제 화판장식이, 그리고 조촌동 고분에서 관고리와 관못, 금동제 귀고리가 출토됨으로써 이 무덤에 묻힌 주인공이 상당한 세력을 보유한 권력자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나포면 장상리 고분의 발굴 결과는 인근 익산시 입점리나 웅포리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유력한 지방세력이 활동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들 토착세력은 분명 중앙과 일정한 관련을 맺으면서 성장한 세력으로 추정된다. 이들 세력은, 특히 백제의 수도가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옮겨진 이후 이곳 금강유역이 대내외의 관문으로서 그 위상이 높아지게 됨에 따라, 이를 발판으로 중앙세력과 좀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여 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 말기의 이 지역의 상황과 관련하여 오성산(五聖山)의 전설도 빠뜨릴 수 없다. 이 전설은 금강 하구에 위치한 군산이 백제와 나당 연합군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던 격전지의 하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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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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