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란 낮에는 연기와 밤에는 횃불로써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통신제도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근대적인 통신제도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개인정보를 다루지 않고 오직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전보기능만을 전달했다. 그리하여 가야계 왕릉 못지않게 가야계 소국의 존재여부를 방증해 주는 가장 진솔한 고고학 자료이다. ‘양직공도’ 및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가야계 소국 반파가 513년부터 3년 동안 기문과 대사를 두고 백제와 갈등관계에 빠졌을 때 봉수제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의 봉수가 존재하고 있을 개연성이 충분히 상정된다. 삼국시대 봉수가 ...
2200년 전 전북혁신도시를 테크노밸리로 만든 제나라 전횡의 후예들은 100년 뒤 이동했는데, 이들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 장수군 천천면 남양리다. 1989년 남양리 이방마을 김승남씨가 구덩이를 파던 중 청동과 철기유물이 함께 나왔다. 당시 밭주인이 무 구덩이에서 쏟아진 유물을 발견매장문화재로 신고함으로써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때부터 장수군이 가야 영역에서 철기문화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흔히 ‘철의 왕국’으로 회자된 가야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6세기 중반까지 영남 서부지역에서 호남 동부지역에 걸쳐 존재했던 소국들의 총칭이다. 가야를 소개할 때 마...
2200년 전 전북혁신도시를 당대 최고의 테크노밸리로 이끌었던 세력집단은 한 세기 이후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이들의 흔적이 유적과 유물로 확인된 곳이 지리산 뱀사골 서쪽 달궁계곡이다.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쓴 ‘황령기’에도 마한의 왕이 진한의 침공을 받아 지리산으로 피난하여 도성을 쌓고 그 도성을 71년 동안 유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최근에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주관으로 이루어진 지리산 일대 지표조사에서 2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발견되어 그 개연성을 높였다. 한마디로 지리산 달궁계곡은 제철유적 박물관이다. 전북지역에서 제철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달궁계곡이다. ...
인류의 역사 발전에서 공헌도가 가장 높은 것이 철과 소금이다. 한나라 무제가 제정하여 시행한 소금과 철의 전매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염철론’으로 전북은 ‘염철론’의 큰 무대였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전북 서부지역에서 소금과 동부지역에서 철이 생산됐는데, 여기에 근거를 두고 전북을 ‘동철서염(東鐵西鹽)’으로 표명하려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줄곧 전북에서 생산된 소금과 철이 전북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토착세력집단이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기원전 202년 제나라 전횡이 어청도로 망명해 왔는데, 그를 모신 사당 치동묘(淄東廟)가 군산 어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