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는가를 추정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간의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 정도로 추정된다.
우리 나라에서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 경부터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의 초기에는 본격적인 농경 단계로 진입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대체로 큰 하천변이나 해안가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금강의 관문인 군산은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어, 이 시기에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이를 입증해 주 듯,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를 비롯한 가도, 내초도, 노래섬, 비응도, 오식도 등의 도서 지역에서 모두 20여개소의 패총이 발견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인 농경생활은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청동기문화와 함께 시작되었고, 기원전 700년 무렵에서야 비로소 정착농경 단계로 들어선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성산면 도암리 주거지를 비롯하여 지석묘, 패총, 그리고 유물산포지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장계산부터 영병산까지 뻗은 능선과 오성산 주변, 그리고 구릉지대가 발달한 개정면과 대야면 일대에 밀집된 분포상을 보인다. 기원전 30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고조선 유이민의 남하로 지석묘 사회가 급격히 해체되면서 마한(馬韓) 사회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한편『삼국지』동이전 한조에는 마한에 모두 54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한의 영역이 오늘날 경기 서해안, 충남, 전북, 전남 등에 걸쳐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소국들은 현재의 군(郡) 단위마다 하나씩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군산에는 두세 개의 소국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원삼국시대의 토기편이 수습된 20여개소의 패총과 40여개소의 유물산포지, 조촌동의 주구토광묘, 대야면 산월리 고분군 등이 있다. 이렇듯 군산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이전까지 인근 지역에 비해 선진 지역으로 발전하였을 개연성이 높다.
가도패총 발굴후 전경
고군산군도 전경
비응도 빗살무늬 토기